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빈센트 반 고흐 (문단 편집) === 구필 화랑 시절 === 고흐의 큰아버지인 '센트 삼촌(Oom Cent, 1820–1888)'의 본명은 빈센트 반 고흐로 고흐와 똑같은 이름이다. 고흐의 아버지 테오도뤼스와 우애가 남달랐던 센트는 헤이그에서 화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특히 센트는 프랑스의 바르비종파를 접하고나서 바르비종파의 화풍이 득세할 것을 예측하고는 바르비종파의 그림들을 수집해 헤이그에서 판매했다. 센트는 단순히 바르비종파의 그림을 파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네덜란드에 바르비종파의 화풍을 들여와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육성했는데 이러한 센트의 생각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르비종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연을 그리는 것이었고, 일반적으로 아틀리에 안에서 상상으로 그림을 그리던 방식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가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점차 대세가 되어갔는데 센트는 이런 추세를 놓치지 않아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센트는 후에 고흐의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흐의 미술에서 자연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점과 바르비종파의 대부인 밀레의 영향을 받게 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구필 화랑은 센트가 파리의 화상인 아돌프 구필(Adolphe Goupil, 1806–1893)과 동업하여 만든 화랑으로,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프랑스에 소개하고 판매할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네덜란드의 전설의 화가인 렘브란트와 베르메르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프랑스에 아직 남아있었다는 점을 간파한 센트의 도전은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센트에게는 안타깝게도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의 아들들인 빈센트와 테오를 자식처럼 생각하며 아꼈고 빈센트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려는 생각까지도 했다. 만약 고흐가 이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화가로서의 고흐는 없었겠지만 고흐 자신의 인생은 매우 편안하고 안락했을지도 모르겠다. 흔히 하는 오해와는 달리, 이 시기 고흐는 안정적으로 구필 화랑에서 일하면서 전도 유망한 화상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나중에는 동생 테오의 도움을 받지만 이 시기에는 '''빈센트가 테오를 도와줬으니''' 말 안 해도 알 만하다. 아돌프 구필은 당시 샬롱 수상작들을 판화로 만들어 찍어서 파는 판화 인쇄업도 겸했는데 이때 고흐를 유난히 감동시킨 것이 바로 밀레였다. 바르비종파를 네덜란드에 소개한 큰아버지 센트의 영향도 있었지만 고흐는 구필 화랑에서 판화로 복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보고 상당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고흐는 밀레를 '''밀레 사부'''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했고, 밀레의 그림은 고흐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76년 유난히 미술의 관점에 대해 손님과 논쟁을 자주 벌였던 탓에 그는 화랑에서 해고된다... 라고 알려진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이때의 일을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하기 힘들며 그 바탕에는 상당히 복잡한 뒷배경이 숨어있다. 전도 유망한 화상의 길을 가고 있던 고흐는 구필 화랑의 런던지점을 내기 위해서 런던에 파견되었으나 고도로 산업이 발전한 런던에서 본 가난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충격과 하숙집 주인의 딸인 외제니 로예를 사랑했지만 실연을 당하게 된 아픔이 겹치면서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에 고흐의 일평생을 괴롭히게 되는 정신적인 증세도 영향을 끼쳤다. 앞서 말한 노동자의 현실에 충격을 받아, 훌륭한 그림을 보호하고 작가를 후원하는 이상적인 방식이 아닌 크게 가치 없는 그림이라도 돈을 위해 감언이설로 팔아야 하는 화상의 생활방식에 염증을 느끼게 됐다는 견해도 있다. 사실 미술의 관점이란 것도 고흐가 어떤 새로운 미술적 사조를 접했던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있는데 이런 미술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하는 식의 생각에 좀 더 가까웠다. 구필 화랑이 취급하던 살롱 수상작 같은 엘리트 중심적인 그림에 동감하지 못하게 된 것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정신적 충격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종교에 매달린 것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래도 큰아버지 센트의 연줄 덕으로 구필 화랑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